목양실에서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서는 두 번의 부흥집회가 연속적으로 두 주에 걸쳐 있었습니다. 처음 부흥회는 개혁교회 및 사랑의 교회와 함께 연합 일일 부흥회로 노진산목사님을 모시고 말씀 잔치를 열었었고, 그 다음 주일에는 한국의 두부전도왕/낙도전도왕으로 잘 알려진 반봉혁장로님을 모시고 전도 간증집회가 있었습니다.
두 분의 강사님을 비교해보면 상반된 점이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많은 분들이 큰 은혜를 받는 모습을 보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노진산목사님은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스럽게 선포하시는 분으로 전평이 나신 분이기에 말씀을 잘 풀이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모든 분들이 많은 은혜도 받고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반봉혁장로님은 장로교 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감리교회 장로님으로서 노목사님처럼 말씀을 잘 풀이하시거나 설명을 하시지 못하셨지만 (신학공부를 하시지 않으셨기에 어처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오랜 전도 생활을 통하여 2천명이 넘는 분들을 전도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하신 경험을 토대로 성령님께서 하신 일들을 나눌 때 많은 분들이 공감하였고 도전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두 번의 부흥집회를 통하여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는 다양하게 역사하시고, 은혜를 끼치시는 방법도 다양하기에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수적인 말씀 해석이나 경험적인 삶의 체험이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철학적으로 이성주의 혹은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공존해 왔는데 마치 grandfather clock의 추처럼 우측과 좌측으로 움직여왔습니다. 우측이 이성주의 혹은 합리주의라고 가정하고 좌측을 경험주의라고 가정했을 때 시대에 따라 작은 움직임이 있었지만 큰 움직임을 거론한다면 오랫동안 자연을 논하는 철학 (경험주의라고 칭할 수 있는)에서 소크라테스 이후 인간적인 사상(이성주의)을 논하게 되었고, 행복한 삶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많아지는 경험주의 (대표적으로 에피쿠로스학파)가 팽배해 지다가 17세기에 데카르트 (Rene Descartes)를 기점으로 다시금 합리주의가 사람의 관심을 끌더니만 반세기 후에 나타난 로크 (John Locke)나 18세기의 흄 (David Hume)의 영향을 받아 경험주의가 다시금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과학의 발전 덕에 오랫동안 주를 이루어 오다가 언젠가부터 인간의 한계와 과학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이성주의로 향하고 있는 시대가 현재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도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함께 공존해 왔는데 철학적으로 시계추가 좌우로 많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항상 상대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시계추의 움직임을 논한다면 단 두 번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모든 분야 (문학, 음악, 미술 등) 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었던 시대 (보수주의 시대) 에서 15세기와 16세기에 인본주의가 태동하더니만 17세기와 18세기의 유럽에서 계몽주의 운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중심이 인간이 중심이 되었고, 대표적인 철학자로 칸트 (Immanuel Kant)를 지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계몽주의와 진화론의 영향으로 자유주의가 팽배해 진 가운데 1924년 5월 Auburn 신학교 (지금의 유니온신학)에서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체의 부활, 그리고 기적의 역사성 등 신학의 근본이 되는 이 다섯 가지 사실을 부인하는 'Auburn Affirmation' (어번 선언문)에 PCUSA의 1274명이나 되는 목회자들이 싸인을 하는 자유주의의 극치를 이루다가 5년 뒤인 1929년에 보수를 외치는 몇 몇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설립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보수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를 양성해오므로 지금은 보수적인 쪽으로 시계추가 향하여 왔고 지금은 과거에 비하여 보수적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보수만을 외치는 가운데 삶속에서 뜨거운 열정이 식어지고 머리만 커져 남을 쉽게 정죄하는 오류를 범했던 과거 보수주의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머리는 차갑지만 가슴은 뜨겁게 세상을 향하여 진리를 선포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 그리고 산위의 도성의 역할을 감당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종파들의 장점들을 수용하고 뜨거운 열정을 본받으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말합니다. 지나친 자유주의 교회뿐만 아니라 지나친 보수주의 교회들은 결국에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또한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성경 말씀에 따라 결정하고, 아울러 성경 말씀을 통하여 지난 일들을 반성하는 삶을 살아야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로 살아갈 수 있고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7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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