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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은 “헬라어(Greek)”라고 하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언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에서 이러한 헬라어의 특징들이 제대로 살려져 있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요한일서 5:18이다. 한국어로 된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중생한 사람)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린다. 역으로 말하자면, 혹시라도 죄를 짓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중생한 사람)이 아닐 것이며,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게 만든다. 이 구절의 후반부는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화시키는데,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성도들을 지키시기 때문에, 악한 자(사탄)가 성도를 만지지도 못하도록 보호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로 우리(크리스천들)는 실 생활 속에서 매일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성숙한 성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덜 죄를 지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결코 죄를 짓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일서 5:18의 말씀이 잘못된 선언이라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성경말씀이 옳다면 우리가 아직 참된 크리스천(중생된 사람)이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단 으로 판정을 받은 어떤 교파에서는 이 구절을 들이밀면서 (1)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인”이라 부르면 안 되며, (2)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도 없고, (3) 만일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죄인이라면 구원받은 자가 아니며, (4) 심지어 “극단적인 분파에서는” 구원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죄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죄”라고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한일서 5:18은 중생한 성도가 결코 죄를 지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의 경우, 어떤 형태의 동사는 “계속”의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요한일서 5:18에서 사용된 동사가 그런 케이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를 헬라어 원문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려 번역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계속해서’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가 된다. 즉 중생한 사람이 어쩌다가 죄를 범할 수는 있겠지만,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악한 죄를 범할 수는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성경 중에는 이러한 의미를 살려서 번역한 경우가 있다. 원문을 잘 살려 번역한 것으로 유명한 ESV에서는 “We know that everyone who has been born of God does not keep on sinning”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음을 우리가 안다)라고 번역하였으며, NIV 성경에서도 “We know that anyone born of God does not continue to sin”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를 짓는 일을 계속하지 않음을 우리가 안다)라고 번역하였다. 반면, KJV의 경우(일각에서는 KJV만이 최고의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We know that whosoever is born of God sinneth not”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번역하여, 헬라어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쉽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실수하거나 죄를 지으며 산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 될 것이다(요일 1:8).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때,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신앙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성장해야 하는 것은 이제 막 태어나는 아이가 아직 100%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갖난 아기일지라도 100% 완벽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인”이 “의인”으로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신앙적으로 성숙해가야 한다. 여전히 우리가 신앙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아직 구원을 얻기에 불충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 인격은 날로 성장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여전히 신앙의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대우한다고 한 바 있다(고전 3:1). 영원히 지옥에 멸망당할 “죄인”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의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앙적으로 성숙해나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엡 4:13).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져야 한다(마 5:48).
하지만 그 성화(聖化)의 과정 가운데 있는 우리는 완벽하지 않으며,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다. 하나님은 현재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을 받을 “의인”으로 인정하시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걸음마를 걷다가 넘어지는 아기처럼 종종 넘어진다. 그렇게 넘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아직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것도 아니며, 반대로 극단적 이단 종파에서처럼 그렇게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뻔뻔스럽게 우길 것도 아니다.
일찌기 어거스틴은 우리에게 죄와 관련하여 이중적인 경고를 한 바 있다. 그것은 우리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어차피 하나님께 용서를 받게 되어 있으니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좋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권고이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그 어떤 악한 죄도 용서를 받게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용서를 받은 크리스천이 그 용서를 오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