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보람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죽기 전에 크나큰 실수를 범하여 수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고 죽어간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이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과 Michael Jackson을 생각하면 두 사람이 공통점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장성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를 누린 두 사람, 그러나 말년에 비자금과 아동 성추행이라는 잘못된 일로 만인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에 관한 수사는 종결되어 더 정확한 사실을 규명하기 어렵지만 삼척동자도 그가 잘못한 것에 대하여는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고, Michael의 아동 성추행은 그 당사자가 자신의 아버지가 돈에 눈이 어두워져 조작한 것이라고 실토하여 어느 정도 사실 규명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워낙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판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다보니 무어라 단정 짓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죽기 전에는 그렇게 비난의 목소리가 컸던 여론이 죽음의 강을 건넌 자들 앞에서는 다들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더욱이 대통령 임기 시절에 국가의 큰 문제 중에 하나인 자살률을 줄이고자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믿기 어렵습니다. 자살공화국 1위의 오명을 벗기고자 노력해야 할 공인이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나라’라는 또 다른 불명예를 안겨주고 가버렸다는 사실에 개탄할 뿐입니다. 그의 자살을 ‘대통령 서거’라고 호칭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며 추모한 사실을 보면서, 역시 우리 한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죽기만 하면 모든 죄가 다 덮어질 뿐만 아니라 영웅시하는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서 또 찾아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Michael Jackson 역시 죽기 전에는 별의별 소문이 난무하고 비난하던 여론도 죽고 나니 좋은 점을 두각 시키며, 팝의 황제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멀쩡하게 생긴 얼굴에 만족하지 않고 수 없이 칼을 댐으로써 희귀적인 피부병 백반증에 걸려 고생하면서 햇빛을 받으면 안 되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우산도 쓰고 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원래의 피부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 희게 하고 싶었다가 도가 지나친 것이지요. 그가 만일 원래모습에 만족하고 활동하였다면 더 많은 사람들 특히 흑인들에게 존경과 인기를 누렸을 텐데 말입니다. 그의 슬픈 사연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부모님들을 통하여 주신 원래의 모습에 만족하여야 한다는 교훈이 되며, 아울러 성형왕국인 우리 고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의 죽음이 그들의 부족한 과거가 미화되고 칭송까지 받듯이 사람이 죽고 나면 과거의 어떤 삶을 살았든지 무슨 잘못을 했든지 상관없이 모두 다 나은 세상으로 옮겨진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복음을 거부한 자들은 영원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모세 외에 모든 사람들의 삶은 단 한절 혹은 불과 몇 마디로 인생을 평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대체적으로 조용한 삶을 살았던 이삭이나,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야곱, 그리고 화려한 인생역전의 삶을 살았던 요셉(50장으로 되어있는 창세기의 3분의 1가량이 되는 16장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음)의 죽음의 결론도 각각 한 구절로 요약되는데(“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그것은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믿음을 자손들 혹은 이웃에게 어떻게 전하고 죽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악한 짓을 하였다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죽기 바로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접하므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 강도는 결국에 성공한 삶으로 마감하였듯이 죽기 바로 전에 주님을 영접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 삶을 마치고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문제는 사람이 언제 죽을 줄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파에 힘쓰면서 어떡하든지 더 많은 사람들이 생을 성공적으로, 의미 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도와주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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