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는데 저해 요소가 되는 것 중에 고정관념 혹은 선입견을 손꼽을 수 있을 줄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고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하시고자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보내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고 친하고 싶은 사람하고만 친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 중에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사람은 새벽기도회 잘 나오니 신앙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술, 담배를 하니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요, 저 사람은 남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으니 가까이 하다가 상처 받을 수 있고, 저 사람은 많이 배우지 못했으니 교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라는 등등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편견의 잣대로 상대방을 잰 후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맞는 사람하고만 친하고자 하는 경우에 신앙이 성장하는데 저해가 됩니다.
고정관념이 신앙 성장의 저해가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것이지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기 예수가 구유에 누이셨다는 말씀(눅 2:7, 12, 16) 때문인데, 구유가 꼭 마구간에만 있어야하는 법이 있습니까? 더욱이 날씨가 따스하고, 양이나 염소를 많이 기르던 그 지역에서 얼마든지 길가에 구유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아기가 곧 태어날 것 같아 거할 여관을 찾아도 찾지 못하여, 여기 저기 헤매고 다니다가 베들레헴 근처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고, 요셉은 낳을 아이를 위하여 마을에 다시금 내려가 길거리에 즐비해 있는 구유 하나를 잠시 빌려 갈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 동굴 안에 이미 들판이나 산지에서 키우는 양이나 염소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구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아마 후자가 더 타당한 추측이겠지요. 사실 동굴에서 태어나신 것은 그냥 제 추측이 아니고 이러한 전승(傳承)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가 지금처럼 추운 12월 달이었다면 길가에 구유가 그다지 많지도 않았겠지만 아시다시피 주님이 어느 달에 태어나셨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목동들도 밤에 양을 치다 천사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을 보면 추운 겨울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이 세상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과 달, 아니 심지어 연도도 주전 4년, 5년 혹은 6년으로 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예수님보다도 오래 전에 태어난 인물들의 태어난 소크라테스(주전 469년), 히포크라테스(주전 460년),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년) 등의 별 볼일 없는 인간들(예수님과 비교해서)의 태어난 연도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언제 태어나셨는지 모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분의 탄생 연도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주전 4년경으로 생각해오다가 동방박사의 방문 후에 두 살 미만의 아이를 죽인 헤롯대왕이 주전 4년 3월에 즈음에 죽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이 대두된 이후에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주전 5년 혹은 6년으로 보는 견해가 예전보다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 분의 탄생이 비밀로 숨겨진 것에 대하여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 땅에 오셔서 다윗의 동네에서 자라지 않으시고 나사렛 깡촌에서 가난하게 자라셨고, 가난한 자와 소외 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도 편하게 누우실 거처도 없이 다니셨으며, 힘없이 잡히시고 비참한 형벌의 죽음을 당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의 삶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곧 의도적으로 숨겨진 비밀이라는 것이지요.
헤롯이 두 살 미만의 많은 아이를 죽인 비참한 사건도 실상은 동방박사들의 고정관념 혹은 선입견으로 비롯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방에서부터 그들은 인도한 별만 쫒아갔으면 목자들처럼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경배할 수 있었을 텐데(아마도 그들은 밤에만 여정을 하다가 낮에는 쉬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후, 그 별을 계속 따라가지 않고 ‘왕으로 나실 아기는 왕궁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더 이상 별을 의지하지 않고 밤이 되기도 전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헤롯왕을 만났기 때문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별은 예루살렘을 지나 남서쪽 6마일을 더 가야 도착하는 베들레헴을 향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환영을 받고 며칠인지, 몇 주간인지는 모르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성에서 나오다 보니 그 별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고, 그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어떤 사람(아마도 목자 중에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의 호의로 그의 집에 계신 것(마 2:11)을 발견하고 경배한 것이지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추측을 한다면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이 엉뚱하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동방박사들을 보고 그들이 그곳에서 나올 때까지 예루살렘 근방에서 기다린 것 같은데 이는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작은 선입견 하나를 더 언급한다면 동방박사의 수를 셋으로 보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의 숫자가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찬송가(116장과 123장)를 부를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고 찬양하곤 합니다. 이는 세 가지 예물 때문에 세 사람으로 추측하는데 전승에 의하면 완전수인 12명이 찾아 왔었다는 전승도 있고, 세 사람 이였으며 그들의 이름을 언급한 전승도 있습니다. 곧 황금을 가지고 온 사람은 Melchoir로서 하얀 머리의 턱수염이 긴 나이 많은 사람, 유향은 Casper으로 턱수염이 없고 불그스름한 살결을 갖은 젊은 사람, 그리고 몰약은 Balthasar으로 가무잡잡하고 턱수염이 짧은 사람 곧 백인, 황인, 그리고 흑인의 대표라는 것인데 저 역시 세 명으로 봅니다만 확실치 않은 것을 세 명이었다고 단언하지 말아야 할 줄 압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정확하게 알고 해석을 해야지 선입견이 첨부되면 원래의 뜻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의 선입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고,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선입견의 색안경을 벗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도 없고 교제의 폭이 좁아져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는데 저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하실 때 선입견으로 대하시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우리처럼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으로 우리를 대하셨다면 아기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보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수많은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듯이(제 추측이 맞는다는 전제하에) 우리의 고정관념 혹은 선입견으로 우리 주위의 형제, 자매들이 상처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말연시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관심을 갖고 도와줘야 될 줄 압니다.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Mitra)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의로운 태양으로 오신 예수님(말라기 4:2)의 생일로 지키라고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이 그가 죽기 일년 전에(주후 336년)에 선포한 것도 우연이라고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11개월 동안 열심히 일하여 얻은 소산으로 인하여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에게 큰 선물을 받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그 소산의 일부를 추운 겨울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고, 밝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라는 하나님의 숨은 뜻이 아닐까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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