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오류가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성경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번역에 있어서는 오류가 있습니다. 오류가 없다는 것은 성경 원본이 오류가 없다는 것이지 사본이나 번역본에도 오류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새로운 번역 성경들이 출간되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개혁한글판만이 하나님의 말씀인양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신 것 같은데 사실 미국에서도 1950년대 이전에는 King James Version만이 성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번역본들은 무시했었다가 이런 선입견이 없어진 후 수많은 번역본이 나왔으며 그 중에 더욱 훌륭한 번역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서로의 미흡한 것을 보안하다보면 원본에 더 가까운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난해한 말씀들 중 한 구절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언약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 4절의 말씀을 의거하면 그 안에는 세 가지 곧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다고들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두 돌판만 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8장 9절과 역대하 5장 10절에 똑같이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과 히브리서 9장 4절의 말씀과의 다른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도 과거에는 히브리서의 말씀은 언약궤가 성막에 있을 때의 말씀이고 열왕기상과 역대하의 기록은 나중에 솔로몬 시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세 가지가 들어있었는데 아마도 다윗 시대의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안을 쳐다 볼 때 꺼냈든지 아니면 누군가가 꺼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4-5년 전 앞의 두 군데 말씀과 출애굽기 16장과 민수기 17장의 말씀을 토대로 언약궤 안에는 항상 두 돌판만 있었고 다른 두 성물은 언약궤 앞에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출 16:33-34(“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과 민수기 17장 4절(“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에서 만나를 증거판 혹은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가만 생각하면 누가 감히 언약궤에 손을 대어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성물을 만질 수 있었겠습니까? 레위 사람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가지 않고 수레에 실어 옮기는 중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무의식중에 언약궤를  붙들었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과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를 열어 보았을 때도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물건을 만져보기도 전에 쳐다 본 즉시 수많은 사람들(오만 칠십 명-표준새번역, NRSV, KJV등등, 칠십 명-NIV, 현대인의 성경, NIV, RSV, NRSV등등 우리가 주로 보는 개역성경에는 (오만)칠십 명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제 소견에도 작은 마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지 않아 칠십 명이 맞는 것 같음)이 즉사한 사건을 생각하면 그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안’이라는 헬라어 ‘엔’은 보통 ‘안에’라고 해석하지만 그 외에도 ‘에,’ ‘위에,’ ‘에게,’ ‘가운데,’ ‘중에,’ ‘동안’  그리고 영어에서  ‘with’(마 16:28; 요일 5:6), ‘by'(롬 5:9; 히 9:22; 계 1:5)로도 해석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언약궤 안에 있는 두 돌판이나 그 앞에 있는 만나를 담은 금항리와 아론의 지팡이를 같이 묶어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엔'을 ‘그 안’이 아닌 단순히 ‘거기에’로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거기에(not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이와 같이 전치사 하나를 ‘안’으로 해석하느냐 ‘에’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이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요. ‘안’이 아닌 ‘에’로 해석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구약의 말씀과도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나를 담은 금항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언약궤 앞에 놓았어도 두 돌판과 함께 하나로 묶어 지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몸에서 몸속에 있는 내장의 기관들이나 몸 밖에 있는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도 다 한 가지로 우리 몸이라고 지칭하듯이 말입니다.


   혹 어떤 분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증거판에 두라고 말씀하신 것은 언약궤 안에 있는 증거판 앞에 두라는 말씀으로 그 안에 두라고 명령하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모세가 받은 두 돌판을 언약궤에 옆으로 세워 놓았을 리 만무하고 가장 먼저 두 돌판을 넣어 바닥에 놓았을 것이기 때문에 만나를 언약궤 안에 넣으라고 명령하셨으면 증거판 위에다 얹어 놓으라고 명령하시지 그 앞에다 놓으라고 명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6장의 증거판이나 민수기 17장의 증거궤나 히브리 원어는 ‘에두트’로 똑같은 단어로서 언약궤 혹은 증거판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것의 앞에 두라 명령하신 것은 증거궤 밖에 앞에 두라는 말씀이시지 증거궤 안에 두 돌판 앞에 두라고 하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성물, 곧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증거궤 곧 언약궤 안이 아닌 앞에 두었던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세 가지가 다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언약궤의 크기가 가로 이 규빗 반(약 113cm) 세로와 높이가 일 규빗 반(약 68cm)으로써 두 돌판, 항아리 그리고 지팡이가 다 들어가기에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지팡이가 지금 노인들이 갖고 다니는 지팡이만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저도 할 말이 없지만 그 당시 지팡이는 단순히 걷는데 의지하는 작은 지팡이가 아니라 양을 치는데도 사용하고 호신용으로도 사용되는 사람의 키보다도 긴 지팡이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그 안에 언약의 두 돌판, 곧 증거의 말씀이 들어 있기 때문에 언약궤 혹은 증거궤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지요.  언약궤는 언약의 두 돌판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그 두 돌판이 들어가기에 알맞은 크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실 제 컴퓨터 안에 있는 7가지 한국어 성경이나 14가지 영어 성경 그 어디에도 저처럼 해석한 것은 찾아볼 수 없고 다 ‘그 안에’를 언약궤 안으로 해석하고 있어 공부도 많이 못한 제가 감히 히브리서 9장 4절 말씀의 해석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가 무척 두렵고 떨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저 나름대로 제 해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고, 머지않아 훌륭한 신학자가 히브리서 9장 4절의 원본의 말씀이 아닌 해석의 말씀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 이것을 주장한 사람이 벌써 있는데 제가 모를 수도 있지만 주위에 실력 있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경 원본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으므로 사본들과 번역본은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겠지만 Trinity 신학교 교수인 Wayne Grudem교수가 언급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약 1000년의 차이가 있는 두 사본을 살펴보아도 많은 차이가 없으며 그것도 주로 접속사나 전치사를 다르게 해석한 것이라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성경의 양피지 사본들 중 가장 오래된 것들인 바티칸 사본이나 시내산 사본이 원본과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번역들도 원본과 별 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가 구원 얻는데 충분한 말씀이요,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Grudem 교수는 “만일 사본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사람들의 실수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오류가 없으신 분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습니다. 다만 사람의 실수로 잘못 번역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계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수정하므로 성경 원본에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연구하며 묵상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성경의 비밀과 난해한 부분을 많이 남겨 두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궁금증을 더 갖게 하시고, 모든 비밀과 해석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듯이 확실히 알게 되는 그 날, 곧 주님의 재림을 더욱 사모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집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내가 싯딤나무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여호와께서 그 총회날에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신명기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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